"랜덤박스는 도박"... '확률형 아이템' 규제 총대 메는 유럽

지난 6월 출시된 '디아블로 임포털'은 기존 '디아블로' 프랜차이즈를 모바일 환경에 이식하면서 확률형 아이템 개념을 도입해 과금 논란이 일었다. 디아블로 에모탈 화면 캡처

지난 6월 출시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 불멸'이 서구권에서 과도한 과금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스페인이 대규모 과금을 유발하는 확률 아이템, 이른바 '랜덤박스'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발표했다.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입법이 진행되면서 관련 규제가 유럽연합(EU)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알베르토 가르손 스페인 소비자장관은 지난 1일 랜덤박스에 대한 규정 초안을 마련하며 자신의 제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을 보면 현재 국내에서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인 확률지시 의무화를 포함하는 것은 기본이고, 보다 강력하고 광범위한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이 법안은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의 랜덤 박스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미성년자가 성인신분을 이용하는 점을 고려해 게임사는 구매자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성인 고객이라도 랜덤박스의 과도한 구매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랜덤박스가 포함된 게임의 경우 제한사항도 늘어나서 새벽 1시에서 5시 사이에만 방송을 통한 광고가 가능하다. 위반 시 최대 10만 유로(약 1억3000만 원)의 제재와 과태료가 부과된다. 초안은 지난 5월부터 시민단체와 업계의 입장을 청취한 뒤 작성됐으며 늦어도 이달 안에는 국회로 옮겨져 입법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랜덤 박스를 목표로 하는 유럽 소비자 단체

EA의 FIFA 시리즈 중 얼티밋 팀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선수를 팀에 포함시키기 위해 랜덤 박스인 플레이어 팩을 구매해야 한다. 플레이어 팩을 열어도 원하는 선수가 있을 확률이 낮아 유럽에서는 과금유도라는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노르웨이 소비자 위원회 보고서 캡처

이 같은 강도 높은 규제 이면에는 '랜덤박스가 도박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유럽 전역의 소비자 단체들은 랜덤 박스를 도박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대책을 요구했다. 노르웨이 소비자위원회(NCC)는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게임 내 랜덤박스 구매를 유도하는 디자인과 메커니즘이 약탈적이고 조직적이며 소비자 취약점을 노리는 것이 분명하다"며 게임업체들을 직격탄을 날렸다."

게임업계가 제도 단계부터 우려를 표명했지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비디오게임협회(AEVI)는 "랜덤박스는 비디오 게임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는 것은 비디오 게임 생태계에 매우 해롭다"고 말했다. 도박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자율규제와 소비자 보호가 규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무작위 도박 금지" 판결에 법으로 대응

블리자드의 1인칭 슈팅 게임 "오버워치"는 루트 박스라고 불리는 랜덤 박스를 가지고 있다. 다만 상자를 열어 얻은 제품이 게임의 내부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캐릭터의 외관에 한정돼 있어 확률적 아이템이라는 비판이 심하지 않다. 유튜브 스크린샷

그동안 각국 사법당국은 대체로 확률형 항목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 확률론적 아이템이 게임의 일부이며 기본적으로 도박과 동일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랜덤박스 캠프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3월 대법원이 일렉트로닉아츠(EA) 축구경기 국제축구연맹(FIFA) 시리즈에 포함된 랜덤박스 콘텐츠가 도박게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네덜란드는 오히려 숫자 입법을 통해 유료 랜덤박스를 명확히 규제할 태세다. 자민당(VD), 기민당(CDA) 등 보수 연립여당 4당과 진보 2당이 힘을 합쳐 미성년자의 유료 랜덤박스 접근을 막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참여정당 구성을 고려하면 통과가 유력하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이모탈 출시에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성공했다.

디아블로 불멸의 유료 아이템인 '전설의 문장'은 '전설의 보석'을 얻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데, 게이머들은 사실상 유료 랜덤박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디아블로 에모탈 화면 캡처

유럽 규제 움직임이 예고된 가운데 '악의적 과금'을 유도해 서양에서 논란을 빚은 디아블로 불멸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출시조차 되지 않고 있다. 벨기에는 2018년부터 랜덤박스를 규제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재판과 입법이 진행 중이다.

디아블로 임포털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배틀넷(블리자드 게임 전용 운전 프로그램)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도 두 곳 모두 등장하지 않는다.